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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마루 밑 아리에티
아리에티(하슬)
쇼우(고원)
스피라(진솔)
가상등장인물(올리비아혜)

[권슬] The Borrowers 

 

 

 

 

1.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좋지 않았다기보단 안 좋았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나는 몸이 나빴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만 절감하는 느낌으로 지난 19년을 살아왔다.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원래부터 가시가 많던 선인장을 온실에 데려온 거라면 몰라도. 꽃을 피울 마음 따위는 없었다. 심장이 약하다 했다. 12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나서부터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가 도로 빠르게 뛰고, 그러다 급기야 멈추기까지 하자 사람들이 몰려오는 그런 때들이 더욱 잦아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학교에 돌아가면 나를 맞는 건 속이 텅텅 빈 걱정의 말들이었고 결국 그건 겉이 휘갈겨진 모순의 연속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비극에 등장하는 힘 없는 주인공으로 살아가라고 누군가 지시라도 내린 마냥 짜여진 것 같은 삶을 살아오며 19번째 여름을 맞이했다. 

 

 

2.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내가 19살까지 살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대 수명은 16살까지였고 이미 그 시간에도 호흡기를 입가에서 떼는 날이 손에 꼽을 수 있을만큼 현저히 적었다. 

 

나는 또 어디로 버려지는거지. 

 

아빠의 차를 타고 아무도 없는 아스팔트 위를 지나가며 속으로 물었다. 나는 왜 또 삶을 기대할 수 없을만큼 고요한 곳으로 남겨지는 거지. 되물어봐도 돌아오는 건 조금 열린 창문 틈으로 기어들어오는 바람이 전부였다. 몸이 아픈데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나는 비관적이게 되었다. 심장이 지끈거릴 때마다 온 몸의 세포들이 나의 희망을 병이라는 틈을 타고 와 좀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좀먹힌 희망은 뼈대밖에 남지 않았고 나는 차츰  바뀌어갔다. 누군가는 이걸 슬픈 일이라 하겠지만 나는 그 누군가가 아니다. 또 어디로 가는 걸까.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채원아, 미국 갈 때 까지만 안 아프면 돼. 너 가서 치료받고 하면 정말로 좋아질거니까.” 

 

아닐 것 같아요, 라는 말이 목구멍 위에까지 차올랐지만 꾹국 삼키고 애써 네라고 의연하게 답하며 좌석에 등을 딱 달라붙어 앉았다. 아빠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너무 많은 듯 해보였다. 내가 정말로 미국에 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좋은 치료를 받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없다.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삶을 더 연명할 까닭 따위가 없다. 

 

 

3. 

 

국내에서 유난히 공기가 맑고 잡음이 없는 곳이라 칭해지는 마을로 내려온지 딱 사흘이 되어가던 날이었다. 돌비탈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면 이끼가 가득 낀 돌들이 바닥을 지배하는 계곡이 있었고 거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나무들만 보이는 푸르른 색감의 배경이 나를 반겼다. 내가 가는 곳마다 혜주가 동행했지만 이따금씩 바깥으로 나오면 나는 혜주를 뒤에 두고 혼자서 걸어다녔다. 혜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마냥 입술을 축이고 몸을 가만 두지 못하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외면한 채로 집에 먼저 들어갔다. 그래서 혜주는 내 뒷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나는 그 애의 뒷모습은 커녕, 표정 하나도 못 마주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빛은 둘째 치고 경직 된 입꼬리가 무얼 말하는지. 

 

 

4.  

 

“좋아해요.” 

 

내가 열다섯. 그러니까 혜주가 열네살이었을 때의 얘기다. 혜주는 몸이 약한 나를 옆에서 돌봐주기 위해 고용 된 아이라 하였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내 사회성이 남들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향할까봐 아빠가 붙인 아이일 뿐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혜주는 아빠의 명에 지나치게 충실해 또래의 아이들이 하는 일들을 나와 함께 하려 열심히 노력했다. 그 하루의 끝에 내가 다시 실려 가는 와중에도 혜주는 나의 손을 꼭 붙잡고 중얼거렸다. 

 

“채원언니 죽지 마요. 죽지 마요…그러니까….더 살아봐요 제발……” 

 

더 처절하게 살아갈 이유 따위는 이미 없었고 혜주의 애원은 나의 비관에 아무런 영향을 끼얹지 못했다.  

 

“혜주야 미안해.” 

 

열다섯살의 박채원이 열네살이었던 손혜주의 진심을 거절하며 했던 말. 나는 그 말을 4년간 하루도 빼먹지 않고 건네고 있는데.  

 

 

5. 

 

내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린 대가로 돈을 받는, 그런 원초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원초적인만큼 추상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만한 것이 엄마는 어렸을 때 본인이 살던 집 다락방에서 지금은 사라진 소인들을 본 적이 있다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세상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냥 추상적이니까…항상 과장을 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엄마가 말하는 미신스러운 존재들을 믿을 틈이 없다 생각했다. 현실성 없는 이야기들은 나에게 사치이고 나는 1초를 살아가는 것마저도 공기가 줄어드는지 숨을 헐떡이며 마음을 졸여야하니까. 사실 본 게있다. 엄마가 고등학생 때 사용하던 스케치북엔 사람과 사람보다 2배는 더 큰 꽃이 그려져 있었다는 걸. 뭘까.  

 

 

6. 

 

마을에 내려온지 어느덧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부터 나는 간헐적인 즐거움을 찾으려 애쓰기 시작했다. 밤마다 들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불면증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고 나는 밤을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얗지만 어둠에 가려져서 또 검은 천장을 보며 창문 밖에서 나는 귀뚜라미 소리들과 문 밖에서 새어나오는 어떤 소음을 들으며 심장이 아프지 않았다면, 하는 가정을 하게 되었다. 부푼 상상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창을 마주보게 눕혀진 몸을 반대쪽으로 틀자마자 나는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먼지 한 톨 놓이지 않은 새하얀 화장대 위에서 나를 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모든 것이 인간보다 열 배, 아니 스무배는 더 작아보이는. 

 

“…소인?” 

 

소인이었다. 

 

 

7. 

 

나는 소인을 보자마자 떨리는 손을 뻗어 탁자 위에 있는 스탠드 불을 켜 그 형상이 소인이 맞는지, 혹 내가 작은 쥐를 잘못 본 것은 아닐지 확인하고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소인은 옆구리에 각설탕 한 조각을 단단하게 끼고는 어디론가를 향해 뛰어갔다.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얼굴에 비친 표정은 당혹스러움이라는 감정이 지배하고 있을 것이 불 보 듯 뻔했다.  

내가 뭘 잘못 본 건 아닐까. 

인간과 다름 없는 생김새를 하고서 인간인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후다닥 달려가던 그 모습이 계속해서 눈 앞에 있는 모든 것들과 겹쳐 보였다. 그 다음날 아침, 나는 해가 뜨자마자 엄마의 스케치북에 그려져 있던 소인의 스케치를 보았다. 엄마에서 나로, 또 그 소인에서 전세대의 소인으로, 생명력이 유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구나. 눈꼬리가 말려 올라간 듯 선에 걸터있는 소인의 얼굴을 상상했다. 

 

 

8.  

 

소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더 이상 종족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위해 이런 곳까지 와가며 공부를 하는건지….이해 가지 않는 것들 투성이였다. 무엇이 소인의 생존을 끄는 원동력이 되는건지. 멸종한줄만 알았던 소인이 이 곳에 있는 까닭은 뭔지. 그리고……어제는 왜 그런 무섭다는 듯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건지. 나는 그러한 얘기를을 듣기 위해서 소인이 어젯밤 옆구리에 꼬옥-하고 끼고 있던 각설탕을 화장대에 놔두고 침대에 누워 눈을 뜨고 어제의 소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으로 숫자 천까지 다 세자 정말로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역시 내가 잘못 본 걸까, 하는 마음에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다. 그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제 봤던 소인이 각설탕을 들고 또 다시 사라지려는 채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자리에서 성큼 일어나 그 소인이 또 다시 옆구리에 기고 떠나려 하던 각설탕을 설탕통에 집애 넣었다. 소인의 표정이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안녕. 이름이 뭐야?” 

 

 

9. 

 

이름은 조하슬. 올해 22번째 여름을 맞았다고 그랬다. 그러니까 나보다 3해를 더 많이 살았다. 어서 빨리 각설탕을 돌려주지 않으면 나를 가만 두지 않겠다고 페이퍼클립으로 위협하는 모습이 조금 웃겨 살풋 웃었더니 왜 웃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경계심이 덕지덕지 얼굴 곳곳에 묻은 느낌. 나는 곽휴지통 위에 올라가 앉아있는 하슬을 보고 의문스러운 마음에 한 차례 질문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너희 부족도 얼마 안 가 멸종할 것이잖아. 모든 것들은 죽게 되어있어. 그런데 왜 남의꺼를 훔치면서도 그리 치열하게 살려고 해?” 

 

하슬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더니 대꾸하기 시작했다. 

 

“너같은 애들은 죽어도 모를거야.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건 우리 부족 나름대로의 마지막 발악이라는 걸. 인간은 우리를 학살하려 했고 우리는 그 시간들을 적응하며 살아왔어. 그러니 당연히 우리는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 남을 방법을 찾을 수 밖에.” 

 

하슬은 말을 하면서 안고 있던 각설탕에 눈물을 뚝뚝-하고 흘리기 시작했다. 울지 말라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10. 

 

하슬은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의 후에도. 그리고 며칠, 몇주를 계속해서 나를 만나러 왔다. 우리는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소인족의 역사, 또 어쩌다 소인족이 이곳까지 흘러 들어와 오게 된 것인지, 하는 남루하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하슬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슬은 비관적인 나의 태도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잘 알겠다고 대꾸했다.  

 

“죽는건 하슬이 아니라 내 심장일거라는 걸 알아.” 

 

“…그런 말 하지마. 채원아, 죽지마.” 

 

그 말을 듣자마자 처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하루를 버티기 힘든 족이 나에게 삶의 원동력을 불어 넣어주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고 또 나는 그런 하슬에게 감동 받아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혜주마저 모르게 밤마다 울음을 토하기도 했다. 미국으로 갈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처음으로 살고 싶어졌다. 

 

 

11.  

 

정말 처음으로 살고 싶어졌는데. 그런데 나보다 하슬이 먼저 떠날줄은 몰랐다.  

 

[채원아. 항상 보고 싶을거야.] 

 

각설탕 밑에 깔린 그 작은 글씨를 보자마자 눈물이 먼저 쏟아져 흘렀다. 눈꼬리를 타고 중력의 힘으로 볼을 타고 내려와서 결국은 방 바닥에 뚝.뚝.뚝. 

 

 

12. 

 

[넌 이미 내 심장의 일부야.] 

 

종이를 조심스레 찢어 접고 초등학생이나 만들법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렸다. 혜주는 언덕에 올라가서야 그게 뭐냐고 물었지만 그건 나 역시도 알지 못했다. 지난 몇주간 쌓아온 하슬과의 관계를 향한 말인지.  

종이비행기 밑부분을 손으로 잡고 살짝 밀듯이 비행기를 손에서 떼어냈다. 바람을 타고 비행기가 앞으로 전진하다가 결국엔 추락하는 게 꼭 내 모습 같았다. 내 마음이 적힌 비행기는 이제 내 손을 떠났다. 뒤돌아봤지만 이미 그 자리엔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종이비행기… 

하슬… 

나의 믿음… 

 

어디로 갔을까. 바람을 타고 아직도 하늘을 가르고 있는걸까 아니라면 땅에서 뒹굴고 있을까. 

나는 그렇게 19번째 가을을 맞이하며 마을을 떠났다. 화장대에 빼곡히 쌓인 각설탕은 개미들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모두 그렇듯이. 그리고 감당 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예상할 수 없던 만남을 좌지우지 하는 것 같이. 

작품의 저작권은 창작자 개인에게 있습니다.

A copyright of the work resides in the individual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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